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노 마사루 (문단 편집) == 기타 == * 우노의 뒤를 잇는 또다른 거포 유격수였던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이케야마 타카히로]]와 스타일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은데, 이케야마 역시 무지막지한 배트스피드에 의존한 배드볼 히터, 영웅 스윙어였으며 뛰어난 장타력에 비례해 삼진도 무수히 당했던 선수였고, 또 주니치 구단 사상 최다 홈런 기록을 가진 우노와 마찬가지로 야쿠르트 구단 사상 최다 홈런(304개)를 가지고 있는 것 등 우노와 똑같은 점이 참 많다. 이 때문에 방망이를 언제나 붕붕 휘두른다며 '''[[풍기#s-4|붕붕마루(ブンブン丸)]]'''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 선수시절 내내 3할 타율은 딱 한 번 기록했다는 점도 똑같다.[* 1990년 우노와 동일하게 '''.304'''로 딱 1번 기록했는데 이해 홈런도 31홈런을 기록해 '''NPB 최초의 유격수 3할 30홈런''' 을 달성했다! 참고로 우노가 유일한 3할을 찍은 1989년 친 홈런은 25개.] 단, 이케야마는 우노와 달리 통산 108도루/49도루자, 도루성공률 68.8%로 주루, 도루 실력이 어느 정도 갖춰졌던 데다 1990년대 초반 [[노무라 켄지로]], [[카와이 마사히로]] 등 뛰어난 수비력을 지닌 유격수들 사이에서도 [[골든글러브(일본프로야구)|골든글러브]]를 1차례 수상했을 정도로 유격수 수비도 괜찮았으며 무엇보다도 야쿠르트의 1990년대~2000년대 초반의 황금기를 지탱하며 우노는 단 1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본시리즈]] 우승을 4번이나 맛보고, 이 중 2번이나 [[우수선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큰 경기에도 나름 괜찮은 실력을 발휘하던 선수였다. 대신 우노와는 달리 이쪽은 선수생활 내내 타격 타이틀 수상을 해본 적이 단 1번도 없었다. * [[노안]]으로도 유명한 선수다. 그나마 맨 위에 사진은 신인 때라 노안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아래 사진을 보면 저 호호 할아버지가 아직 50대 초중반이다. * 상기에 나왔던 헤딩 사건 이후 호시노에게 얻어맞기까지 하고 곤욕을 치뤘지만 이 장면이 일본 전역에 방송되면서 모든 야구팬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거기에 평소 친근하고 유쾌한 성격도 겹쳐 '''헤딩형'''이라는 친근한 별명까지 생기며 방송프로 섭외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헤딩 사건은 현재까지도 꾸준히 단골 소재로 쓰이고 있는데, 우노도 소년 야구교실에서 순회 코치를 할 때 자신을 '야구에서 최초로 플라이볼에 헤딩한 사람'이라고 [[자학개그]]를 하기도 하며 초등학생들이 "아저씨! 야구공에 헤딩하는 방법좀 가르쳐주세요!"라고 물어보기도 한다고. * 2019년 [[롯데 자이언츠]]의 [[신본기]] 선수가 헤딩을 선보인 이후 일본에서도 이 선수와 비교되고 있다. [[https://headlines.yahoo.co.jp/article?a=20190606-00062865-theanswer-base|#]] * 등번호 7번은 나중에 한국에서 건너온 [[이종범]]이 2년간 사용하며 1999년 [[센트럴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나중에 7번을 단 한국인 선수인 [[이병규(1974)|이병규]]는 주니치의 53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인 [[2007년 일본시리즈]] 제패에 공헌했다. [[분류:일본의 야구 선수]][[분류:1958년 출생]][[분류:내야수]][[분류:우투우타]][[분류:주니치 드래곤즈/은퇴, 이적]][[분류:치바 롯데 마린즈/은퇴, 이적]][[분류:소사시 출신 인물]][[분류:1977년 데뷔]][[분류:1994년 은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